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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심포지움]2014년도 교황 방문 심포지엄: 교황의 충남 방문 의미와 가치

작성 :
관리자 (2014-07-07)
읽음 :
2994


가. 개요
  o 일 시 : 2014년 7월 2일(수), 오후 2:00~5:00
  o 장 소 : 당진문화원 1층 공연장
  o 참석자
    좌 장  : 강현수(충남발전연구원장)
    발 표  : 김정환 신부(내포교회사연구소장)
                조광(고려대 한국사학과 명예교수)
    토 론  : 김성태(합덕성당 신부)
                오석민(충남역사문화연구원 충남역사박물관 관장)
                유병덕(충청남도 문화예술과 과장)
                김영구(당진시 문화관광과 과장)
                김정겸(서산시 문화관광과 과장)
                박태구(중도일보 차장)


나. 내용
? 강현수(좌장 ·충남발전연구원장)
? 다들 힘드시죠? 또 피곤하시고. (웃음) 또 조금 졸리실 텐데 밖에 커피나
음료수가 있으니까 드시면서 좀 편안하게 같이 얘기를 나누셨으면 좋겠습니다.
저희들이 앞으로 약 1시간 동안 두 분의 주제발표를 듣고 또 오늘 심포지엄
의 제목인 교황님의 충남 방문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같이 토론하는 시간을
갖도록 하겠습니다. 먼저 오늘 저희가 토론자로 모신 분들을 제가 소개를 해
드리겠습니다. 소개 순서는 자료집에 나와 있는 순서대로 토론자들을 모시도
록 하겠습니다. 먼저 제 오른쪽에 합덕성당 신부님으로 계시는 김성태 신부
님 오셨습니다. 환영합니다. (박수) 그 다음 오른쪽에 충남역사문화연구원 박
물관장님으로 계시는 오석민 관장님 오셨습니다. (박수) 제 왼쪽에 교황님
충남 방문과 관련해서 진두지휘하시는 충청남도 문화예술과 유병덕 과장님
참여하셨습니다. 감사합니다. (박수) 자, 왼쪽에 우리 당진에서 문화관광과에
서 역시 교황님 당진 방문 관련 여러 가지 일들을 책임지고 계시는 김영구
과장님 오셨습니다. (박수) 다 아시다시피 교황님이 당진과 서산을 방문하십
니다. 제 왼쪽에 서산시에서 교황님 방문의 진두지휘를 맡으신 서산시 문화
관광과 김정겸 과장님 오셨습니다. (박수) 맨 마지막에 소개할 분은 언론인
이십니다. 충청지역의 정론지인 <중도일보> 차장님으로 계시는 박태구 차장
님 오셨습니다. (박수)
예, 오늘 두 분 아주 좋은 발표의 뒤를 이어서 토론을 하도록 하겠습니다.
지금 저희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약 1시간 정도이고, 또 끝날 때 여기 지금
앉아계신 분들의 질문과 의견들도 들어봐야 하고요. 또 발표하신 두 분의 마
무리 발언도 들어야 하기 때문에, 우리 여섯 분 토론자분들은 약 7~8분 정
도 말씀을 해주셨으면 좋겠고요. 오늘 원래 이 심포지엄에서 다루고자 하는
부분이 교황 방문의 의미와 가치이기 때문에 토론 주제는 교황 방문의 의미
와 가치에 맞춰주셨으면 좋겠습니다. 그렇지만 우리 공무원 분들, 특히 충청
남도 도청 과장님, 또 당진시와 서산시 과장님들은 아무래도 지역발전과의
관계라던가, 충청남도와 당진, 서산의 준비상황에 대해서도 함께 설명해주시
면 더욱 더 감사하겠습니다.
그러면 토론 순서는 제가 조금 전에 소개해드린 순서대로 하구요, 토론자분
들이 먼저 한 분씩 7~8분씩 쭉 말씀을 하신 뒤에, 방청석에서 열심히 경청
해주시는 분들의 자유로운 말씀들을 청해 듣도록 하겠습니다. 그 후에 마지
막으로 오늘 발표자이신 김정환 신부님과 조광 교수님의 부연설명과 마무리
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. 자, 그럼 먼저 김성태 신부님이 화두를 열어주시
길 부탁드리겠습니다.
? 김성태(합덕성당 신부)
? 안녕하세요? 합덕성당 김성태 신부입니다. 제가 합덕성당에 간 지 한 5~6개
월째 넘어가고 있습니다. 얼마 안 되었는데, 가자마자 우리 역사문화연구원
에서 3월 달에 심포지엄을 했죠? 당진에서. 저는 장소만 제공을 한 겁니다.
합덕성당에. 왜냐 했더니, 갑오농민전쟁이 100주년이 되었잖아요? 그 갑오농
민전쟁 100주년보다도 더 먼저 우리 합덕성당에서 봉기가 일어나서 어쩌면
농민전쟁보다도 더 아주 선구적인 역할을 민중들을 중심으로 했다, 그런데
공교롭게도 그게 합덕성당이었대요. 아주 재미있는 역사적 사실이다, 하는
생각을 했습니다. 우리 동학과, 서학. 과거에는 서학이라고 했으니까. 서학으
로 대변되는 천주교, 그것도 내포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 바로 그런 장소였
다는 점이 의미 있고 재미있고, 그래서 장소를 제가 기꺼이 제공을 해서 심
포지엄이 이루어졌습니다.
그런데 오늘 조광 선생님 말씀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습니
다. 그것과 연관되어서도 이미 우리 지역에 1895년 이전에 우리 민중들을 중
심으로 한 주체적인 봉기가 있었고, 그것보다도 100년 전에 천주교 신자들을
중심으로 한 민중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었던 과거가 또 있었고. 그러니 이
러한 것들이 개별적으로 일어난 일들이 아니라는 겁니다. 이미 우리 내포 지
역에 면면이 살아 숨 쉬고 있는 민중들의 아주 주체적인 의식이나 계몽적인
사고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. 제가 오늘 초창
기 천주교의 전파과정에서 있었던 민중들의 역할에 초점을 둬서 많이 배웠
고, 그 때문에 굉장한 기쁨을 느꼈습니다. 그래서 조광 선생님께 감사를 드
립니다.
그 다음에 첫 번째 발표를 해주신 김정환 신부님의 발표문을 가지고 여러
가지 생각을 해봤습니다. 왜냐하면, 교황님의 방문에 충청도, 특히나 내포지
역을 방문해주시는 데 대한 의미를 어떻게 둬야 하는가가 오늘 초점이 아니
겠습니까? 그 점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해보는데, 무엇보다도 교황님
이 방문할 때 뜻하지 않게 이루어진 과정에 대해서 신부님께서 이야기를 해
주셨습니다. 대전교구장 주교님의 편지가 있었다는 거죠. 그리고 그 편지,
친서를 받은 교황님이 그것을 보고 결정을 했다는 겁니다. 그게 아주 결정적
인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발표해주셨는데요, 비슷한 이야기를 교구장 주교님
으로부터 지난 6월 16일 사제연수 때 들었습니다. 4월 24일에 류홍신 아자
로 주교님이 교황청을 방문해서 교황님을 알현을 했다고 합니다. 약 40여분
간 이야기를 했다고 하는데, 그 자리에서 주교님이 교황님께 그런 얘기를 했
대요. “뜻하지 않게 교황님이 오시게 돼서 우리는 아주 기쁘고, 한편으로는
올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시게 된 것을 기적으로 생각합
니다”하고 얘기를 했더니 교황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. “주교님
이 나에게 편지를 보냈고, 나는 그 편지를 받고 한국에 가야 한다는 아주 강
한 느낌을 받았습니다”라는 얘기를 전했다고 합니다. 그렇다면 교황님이 한
국에 가야 한다는 강한 느낌을 받도록 한 그 근저, 바탕에 있는 것이 무엇인
가 하는 것에 우리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지요. 그것은 다름 아니고 김정
환 신부님도 말씀을 하셨고 조광 선생님께서도 이야기를 하셨지만 내포 천주
교의 그렇게 중요한 의미와 역사적인 사실들이 있었기 때문인 것은 재론의
여지가 없습니다. 너무나 분명하고 당연하고, 바로 그러한 일 때문에 전국에
서 가장 순교자가 많이 나고 또 신자가 많이 난 지역이 되었지요. 그렇기 때
문에 천주교의 온상이 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. 더구나 124위 가운데 상당
수, 1/3 이상이 바로 이곳 출신이라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끊
임없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.
그런데 간과하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사실이 있습니다. 뭐냐면, 내포의 중
요성에 대해서 어제 오늘만 얘기한 게 결코 아닙니다. 이미 한국 천주교의
역사가 나올 때마다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
1984년과 1989년에 교황님이 오셨을 때는 이 내포지역, 대전교구에 한 발짝
도 들이지 않았습니다. 그러면 이번에는 중요하고 그때는 중요하지 않아서였
을까. 그건 아니겠지요. 다 중요하게 인식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. 하지만 이
번만큼은 다른 때와 다르게 오로지 대전교구만 방문을 하신다는 것도 바로
이 내포지역만 방문을 한다는 것도 참 재미있는 사실입니다. 그것에 비추어
본다면. 그때 못 왔으니 두 배로 오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한편으로 들면
서도, 왜 그럴까 하는 것을 생각해 봤습니다. 그런데 이 즈음에서는 그런 생
각을 하게 됩니다. 처음에 이 교황 방문이 확정이 되고나서, 한국주재 교황
청 대사관에서도 오고, 또 주관 교구청 부서에서도 와서 답사를 하기 시작했
죠. 그런데 거기에서 사실은 처음에 논의되었던 것은 뭐냐면, 해외에서 오는
사람들의 불법체류 문제, 아니면 여러 가지 사건사고가 우려가 되기 때문에
한 장소에서 계속해서 머무르면서 할 수 있는 그러한 큰 장소를 선택하는 것
이 첫 번째 관건이었다고 합니다. 그래서 국립청소년수련원이라던가, 대전이
나 천안의 체육관이나 시설들을 이용해서 하는 것이 참여하는 사람이나 주관
하는 사람이나 편하다는 것이었죠. 그런데 그것이 점점 대화가 되어가는 과
정 중에서 다시 내포지역의 성지들로 확정이 되었습니다. 그것은 아까 말한
그런 얘기들 때문이었겠지만, 그렇게 된 이유 가운데 저는 다른 몇 가지를
생각해봤습니다. 하나는 뭐냐면, 이미 1980년대와는 다르게 지금은 국제대회
나 순례자들을 유치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겁니다. 그 사이
에. 그러한 훌륭한 마음만 가지고는 안 되겠죠. 올 수 있는 시설이나 그런
것들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이미 1980년대 이후부터 더 최근까지는 여러 교
회라든가 당진시라든가, 충남도 지자체, 그리고 또 지역 주민들이 사실은 굉
장히 많은 관심을 가지고 준비를 해왔다는 겁니다. 굉장한 많은 준비를 해왔
다는 것이 최근에도 몇 가지 사실이 있는데, 그것은 아마 충남발전연구원의
역할도, 오늘 이런 자리라서 <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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